서양 지성사의 원류를 찾아서: 고대 그리스어의 이해

고대 그리스어란 무엇인가?

엄격한 고증에 따른 사용 시기를 따져보면, 고대 그리스어는 기원전 15세기경 미케네 문명에서 쓰이던 선형 B 문자Linear B를 시발점으로 하여 기원전 8세기경 알파벳의 도입, 기원전 5~4세기 클래식 고전기를 거쳐 중세 초기에 이르기까지 지중해 세계의 사상을 지배했던 언어이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서양 철학과 문학의 거장들, 즉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호메로스, 헤로도토스 등 위대한 사상가들이 바로 이 언어로 고뇌하고 자신의 사상을 기록했다.

서양 문학의 시초, 호메로스의 흉상
출처: Kozlik_Mozlik / Getty Images

호메로스의 위대한 서사시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를 필두로, 역사의 아버지 헤로도토스의 저술인 《역사》, 투퀴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소포클레스와 아이스퀼로스,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작품에 이르기까지 인류 문명사의 정수가 모두 고대 그리스어로 작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는 지역별로 다채로운 방언이 존재했으나, 이는 완전히 다른 언어가 아닌 말 그대로 방언Dialect, 즉 사투리의 개념이었다. 따라서 가장 표준적인 기준이 되는 아티케 방언Attic Dialect의 문법을 습득한다면, 에올리안Aeolic이나 이오니아Ionic 방언들도 추가적인 학습을 통해 무리 없이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고대 그리스어는 라틴어와 함께 서양 문명을 떠받치는 두 개의 거대한 기둥, 즉 고전어의 쌍두마차로 불린다. 특히 라틴어와 비교했을 때도 한층 더 섬세하고 복잡한 문법 체계, 정교한 시제변화, 다채로운 어휘 변형을 자랑하기 때문에 이를 완벽히 습득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된다. 그러나 오늘날 서양의 사상, 정치, 문학, 과학 용어의 근간이 고대 그리스어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 언어가 지닌 사상적, 언어학적 영향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고대 그리스어 학습의 목적: 인류 문화의 깊은 향유

고대 그리스어를 배운다는 것은 단순히 옛 언어를 익히는 것을 넘어 인류 문화의 원형을 직접 향유하는 일이다.

역사적으로 고대 로마의 지식인들에게 고대 그리스어 구사 능력은 지성인의 필수 조건이었다. 예컨대 로마 최고의 대변론가였던 키케로Cicero를 비롯한 귀족층은 그리스어를 유창하게 구사했으며, 그리스어 특유의 악센트를 정확히 살려내지 못하는 사람을 두고 교양 없는 인물로 치부하기도 했다. 로마의 정치가와 문학가들은 그리스 원전 작품들을 라틴어로 번역하며 자신의 언어적 감각을 다듬었고, 일상에서도 고급 교양어로 그리스어를 적극 활용했다.

흔히 로마 제국의 유일한 공용어로 라틴어만을 떠올리기 쉽지만, 실제 제국 동부 지역과 훗날의 비잔티움(동로마 제국) 영역에서는 그리스어가 라틴어와 대등하거나 혹은 그 이상의 위상을 누렸다. 당시 제국의 수많은 공문서 역시 라틴어와 그리스어가 함께 혼용되어 작성되었다.

우리가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유명한 마지막 말로 알고 있는 브루투스, 너마저(Et tu, Brute?) 역시 고대 그리스어의 맥락과 깊은 연관이 있다. 이 문장은 셰익스피어의 연극 줄리우스 시저를 통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라틴어 표현이지만, 로마의 역사가 수에토니우스의 기록에 남겨진 실제 역사적 정황 속 대사는 고대 그리스어였다.

원문 표현: καὶ σύ, τέκνον (카이 수, 테크논)

직역: 아이야, 너마저도냐?

또한 고대 그리스의 비극과 희곡은 셰익스피어의 연극을 비롯해 후대 서양 문학 전체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어 그리스 3대 비극 작가인 아이스킬로스가 남긴 오레스테이아 삼부작에서 다루는 비극적 운명과 복수의 굴레는 훗날 셰익스피어의 햄릿이 지닌 구조적 모티프와도 깊게 연결된다. 철학 또한 마찬가지다. 따라서 서양 문화와 사상의 깊은 근원을 탐구하다 보면, 모든 길은 결국 고대 그리스로 통하게 되는 것이다.

번역의 한계를 넘어: 원어가 주는 깊은 뉘앙스

고대 그리스어는 구조적으로 매우 정밀하면서도 다의적인 언어다. 하나의 단어가 문맥에 따라 두세 개 이상의 깊은 사유적 의미를 품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며, 현대 언어의 특정 단어와 1대1로 정확히 대치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고대 그리스어 원전을 번역한 서적을 보면, 번역가가 특정 한 단어를 옮기기 위해 반 페이지가 넘는 주석을 달아 해설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그리스어 핵심 개념인 로고스λόγος라는 단어 하나만 하더라도 문맥에 따라 말씀, 이성, 지성, 계산, 논리, 비율 등 다채롭게 해석될 수 있다. 아무리 뛰어난 번역서라 할지라도 번역가의 주관적 해석이라는 필터를 거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고전을 깊이 있게 공부하고자 하는 독자가 원서가 지닌 본래의 섬세한 뉘앙스나 어감, 숨은 의미를 온전히 포착하기 위해서는 고대 그리스어 원전 형태에서의 직접적인 학습이 필수적인 것이다.

고대 그리스어 철학 원서 필사본.
출처: DEA / Pinaider / De Agostini via Getty Images

고대 그리스어의 주요 방언

고대 그리스 세계는 하나의 통일된 중앙집권 국가가 아니라, 폴리스πόλις, Polis라 불리는 수백 개의 독립된 도시 국가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각 지역의 지형적 격리와 정치적 독립성은 자연스럽게 다양한 방언의 발달로 이어졌다.

지리학자 스트라보는 일찍이 아티케 방언은 이오니아 방언과 거의 같고, 에올리안 방언은 도리아 방언과 거의 같다라는 유의미한 기록을 남겼다. 이는 그리스어 방언들이 크게 두 줄기의 친연성(아티케-이오니아 계열 / 도리아-에올리안 계열)을 가지고 형성되었음을 보여준다.

고대그리스어 방언이 확장된 지중해 영역.
출처: ilbusca / Getty Images

각 지역별로 가장 대표적이고 중요한 주요 방언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A. 아티케 방언 (Attic)

아테네를 중심축으로 에게 해 인근 지역에서 쓰이던 방언이다. 우리가 접하는 고대 그리스어 고전 문헌의 절대다수가 이 아티케 방언으로 작성되었다.

그 배경에는 아테네가 누렸던 압도적인 문화적, 정치적 파급력이 존재한다. 해상 무역을 통해 막강한 부를 축적한 아테네는 에게 해의 패권국으로 도약했고, 학문과 예술에 대한 아낌없는 투자를 통해 문화적 황금기를 열었다. 당대의 뛰어난 사상가와 예술가들이 아테네로 모여들면서 아티케 방언은 자연스럽게 학술과 문학의 표준 언어로 자리 잡았다.

오늘날 고대 그리스어를 입문할 때 가장 먼저 배우게 되는 표준 방언이며, 대다수의 그리스어 문법 교재 역시 별도의 언급이 없다면 이 아티케 방언을 기준으로 설명한다.

관련 인물 및 작품:

  • 플라톤Πλάτων – 《국가》Πολιτεία, 《향연》Συμπόσιον 등 대화편
  • 아리스토텔레스Ἀριστότελης – 《니코마코스 윤리학》Ἠθικὰ Νικομάχεια, 《형이상학》Τὰ μετὰ τὰ φυσικά
  • 크세노폰Ξενοφῶν – 《아나바시스》Ἀνάβασις
  • 투키디데스Θουκυδίδης – 《펠로폰네소스 전쟁사》Ἱστορία τοῦ Πελοποννησιακοῦ Πολέμου
  • 소포클레스Σοφοκλῆς – 《오이디푸스 왕》Οἰδίπους Τύραννος
  • 아이스킬로스Αἰσχύλος – 《오레스테이아》Ὀρέστεια
  • 에우리피데스Εὐριπίδης – 《메데이아》Μήδεια

B. 이오니아 방언 (New Ionic)

에게 해 동부 제도와 아나톨리아 반도(현 튀르키예) 서부 해안가 지역에서 주로 사용된 방언. 문법과 어휘 구조 면에서 아티케 방언과 매우 유사하여, 언어학적으로는 두 방언을 묶어 아티케-이오니아 방언군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관련 인물 및 작품:

  • 헤로도토스Ἡρόδοτος – 《역사》Ἱστορίαι
  • 코스의 히포크라테스Ἱπποκράτης ὁ Κῷος – 《히포크라테스 선서 및 의서》Corpus Hippocraticum

C. 상고 이오니아 방언 / 호메로스 방언 (Old Ionic / Homeric / Epic Greek)

기원전 8~9세기경부터 사용된 초기의 이오니아 지역 방언. 서사시인 호메로스가 활약했던 시기의 언어로, 그의 이름을 따 호메로스 방언 혹은 서사시 방언으로 불린다.

후대의 아티케 방언이나 신 이오니아 방언보다 시대적으로 300~400년 이상 앞서 있기 때문에, 문법적 변칙성이 매우 다양하고 형태론적으로 고풍스러운 특징을 가진다. 당시 다양한 지역의 방언 요소(초기 이오니아 및 에올리안 방언의 흔적)가 운율에 맞추어 섞여 있는 독특한 구조를 보여준다.

관련 인물 및 작품:

  • 호메로스Ὅμηρος – 《일리아스》Ἰλιάς, 《오딧세이아》Ὀδύσσεια

D. 도리아 방언 (Doric)

펠로폰네소스 반도 남부 및 동부, 그리고 시칠리아 등지에서 쓰였으며, 강력한 군사 국가였던 스파르타(Sparta)에서 사용되던 방언. 아티케 방언에 비해 모음 α(알파) 소리를 장모음으로 유지하는 등 음운론적으로 묵직하고 보수적인 특징을 가진다.

관련 인물 및 작품:

  • 아리스토파네스Ἀριστόφανης – 희극 작품 내 스파르타인 등장인물의 대사 및 합창단Chorus 노래 파트
  • 핀다로스Pindaros – 승전가 서정시Ἐπινίκια

E. 에올리안 방언 (Aeolic)

북부 테살리아, 보에오티아, 그리고 에게 해 동북부의 레스보스 섬 등지에서 쓰이던 방언. 개인적 감정을 담아내는 서정시의 발달과 깊은 연관이 있다.

관련 인물 및 작품:

  • 사포Σαπφώ – 고대 최고의 여성 서정시인
  • 알카이오스Alcaeus – 레스보스 섬의 서정시인

F. 코이네 그리스어 (Koine Greek)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방 원정 이후, 헬레니즘 시대부터 지중해 전역에서 보편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공통 공용어이다. 코이네(Κοινή)라는 단어 자체가 공통의, 보편적인 이라는 뜻을 품고 있다.

기존의 아티케 방언을 바탕으로 점차 간소화되면서 보편적이고 명확한 문법 체계로 발전했다. 복잡했던 격변화와 불규칙 동사 활용이 일부 축소되었으며, 발음 체계 역시 현대 그리스어에 가까운 형태 변형을 겪었다.

이 코이네 그리스어는 인류 역사상 매우 중요한 문헌들을 남겼는데, 히브리어 구약 성경을 그리스어로 번역한 70인역(Septuagint)과 초대 교회 시기 작성된 신약 성경이 모두 이 코이네 그리스어로 기록되었다. 따라서 국내 신학교나 종교학 분야에서 접하는 헬라어나 희랍어는 대개 이 코이네 그리스어를 의미한다.

관련 인물 및 작품:

  • 《구약 성경 70인역》Ἡ μετάφρασις τῶν Ἑβδομήκοντα, Septuagint
  • 《신약 성경》 Ἡ Καινὴ Διαθήκη, New Testament
  • 플루타르코스Πλούταρχος– 《영웅전》Βίοι Παράλληλοι

III. 고대 그리스어의 독특한 문장 구조와 어순

고대 그리스어의 언어학적 가장 큰 특징은 단어의 형태 변화를 통해 문법적 기능을 나타내는 굴절어Inflected Language라는 점이다.

굴절어의 특징 덕분에 고대 그리스어는 어순의 자유도가 매우 높다. 일반적으로는 문장의 이해를 돕기 위해 주어-동사-목적어(S-V-O) 순서를 사용하는 편이지만, 명사의 격(주격, 소유격, 여격, 대격, 호격) 어미만 확인하면 그 단어가 문장에서 주어인지 목적어인지 명확히 구별할 수 있다. 따라서 강조하고 싶은 단어를 문장 맨 앞에 배치하는 등 어순을 자유자재로 바꾸는 경우가 허다하다.

또한, 동사 자체에 인칭(1/2/3인칭), 수(단수/복수/쌍수), 시제, 태, 서법의 정보가 완전히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동사 형태만 보아도 주어가 무엇인지 알 수 있기 때문에, 문맥상 명확한 경우 주어 대명사를 자주 생략하곤 한다. 이로 인해 단 두 단어로 이루어진 문장이나 목적어-동사(O-V) 형태의 문장도 빈번히 등장한다.

이러한 고도의 문법적 유연성과 변칙성은 초학자들에게 고대 그리스어를 어렵게 만드는 주된 원인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러한 언어적 특성 덕분에 고대 그리스인들은 시와 문학에서 대단히 정교한 운율을 구현하고, 철학적 개념을 극도로 세밀하게 표현할 수 있었다.

[고전학] 비판 장치 (Apparatus Criticus) 사용의 제안

우리가 읽는 호메로스와 플라톤, 키케로 같은 고대 그리스/로마 고전 저작들은 과연 원래의 저자가 직접 쓴 그 원본 그대로라고 할 수 있는가? 우리는 섣불리 그렇게 단언할 수 없다. 인쇄술이 발명되기 전, 각각의 책은 수기로 베껴 쓰는 필사를 통해 제작되었다. 수백, 수천 년 동안 사람의 손으로 직접 책을 베껴 쓰는 필사 과정Manuscript transmission을 거치며 수많은 오독, 누락, 임의적 수정이 발생했다. 어떤 것은 의도적인 것이며, 어떤 것은 의도적이지 않았지만, 원저자의 ‘원본’에서 멀어졌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보는 텍스트는 무엇인가? 바로 고전학자들이 원전에 가장 가깝게 복원해 낸 정본Editio Critica이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학자나 편집자라고 할지라도, 그는 원저자가 아니기에 이 ‘최초의 원전’과 ‘후대의 정본’ 사이에는 단절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이 단절된 거리를 좁히고, 독자에게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핵심 장치가 바로 본문 아래 작은 글씨로 빽빽하게 적혀 있는 비판 장치Apparatus Criticus, Critical Apparatus혹은 교감기이다.

이번 글에서는 비판 장치가 무엇이고,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핵심 단어들과 함께 알아보도록 하자.

비판 장치란 무엇인가?

고전학자들은 ‘원본’의 복원을 목표로 ‘정본’을 만든다. 그러나 그 정본은 원전에 가까운 추정에 불과할 뿐, 원전 그 자체가 될 수는 없다. 최초의 원전과 후대의 정본 사이에는 어찌 극복할 수 없는 시공간적 / 언어적 거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런 간극을 최대한 좁히고 정직하게 기록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 바로 비판장치이다.

비판 장치는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그 중요성을 갖는다.

  1. 문헌 전승의 기록: 단순히 오타를 고친 기록이 아니라, 필사 과정에서 발생한 오류, 필사자들이 독법에 따라 텍스트를 고치거나 오독한 역사, 필사자들의 난외주석, 판본마다 달리는 차이를 기록한다.
  2. 편집의 기록: 편집자가 어떤 근거로 각 단어를 선택했으며, 선대 학자들은 어떤 수정 제안을 했는지 보여준다.
  3. 열린 텍스트로의 초대: 비판 장치는 편집자가 정해준 텍스트에 대한 맹신을 낮추며, 문헌 전승의 역사 속에서 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비판적 사고의 틀이다.

비판 장치에서 자주 쓰이는 핵심 라틴어 단어 목록

비판 장치는 학술적 보편성을 위해 전통적으로 라틴어가 사용된다. 아래의 단어들을 익혀두면 원전 아래의 비판 장치가 읽히기 시작한다.

1. 문헌 사본 관련 용어

단어약어설명
codex / codicescod. / codd.필사본 / 필사본들고대 / 중세의 사본
manuscriptusms. / mss.필사본 / 필사본들인쇄술 발명 이전의 필사본
fragmentumfr.단편온전한 형태를 보존하지 못한 책의 일부 혹은 파편적 텍스트
papyrusP / Π파피루스파피루스 조각에 남은 텍스트파편
deterioresdet.질 낮은 사본들오류가 많은 등의 이유로 신뢰도가 낮은 필사본들
reliquirel.나머지 사본들주요 사본들을 제외한 잔여 사본들이 공통으로 지지하는 전승 양상
cetericet나머지 사본들현존하는 대다수의 사본
recentioresrec.후대의 사본들시기적으로 나중에 작성된 사본들
editores veteresedd. vett.고대 편집자들인쇄술 발명 직후, 르네상스 초기 등 과거의 선대 편집자들
editores prioresedd. pr.선행 편집자들직전 세대의 편집자들
titulustit.제목 (표제)사본에 명시되어 있는 작품의 제목
scholium / scoliaΣ / schol.고대 주석고대 학자들이 여백이나 행간에 달아둔 해설 및 주석

2. 필사 및 교정 상태 관련 용어

단어약어설명
ante correctionema. c.교정 전필사본에 최초로 적혀 있던 상태
post correctionemp. c.교정 후텍스트가 고쳐진 이후의 상태
correctio / correctuscor.교정됨후대의 필사자나 교정자에 의해 수정된 상태
manusm.필적필적 구분
supra lineams. l.줄 위에 공간 부족으로 줄 위에 덧써둔 글자
supra scriptums. scr. / sscr.단어 위에특정 단어나 줄 상단에 추가로 필사되어 있는 내용
in marginei. m.여백에페이지 가장자리 여백에 적혀있는 주석
in rasurai. r.지워진 자리에칼 등으로 긁어내어 지운 자리에 다시 씀
rasuraras.지운 흔적텍스트가 긁혀 지워진 상태
vacuusvac.공백사본 상에 비어 있는 공간
incipitincip.머리말, 시작작품이나 단락이 시작되는 첫 문장 혹은 구절
finisfin.결말, 끝작품이나 단락의 끝

3. 편집자의 조치 및 행위 관련 동사

단어약어설명
addiditadd.추가했다 후대의 필사자나 편집자가 단어를 덧붙임
delevitdel.삭제했다텍스트에서 특정 단어/문장을 깎아내거나 지움
seclusitsecl.배제했다편집자가 원전에 없던 위작/인입으로 보아 괄호 처리함
expunxitexp.말소했다.점을 찍거나 그어 해당 글자를 삭제 표시함
coniecitconi. / cj.추측하여 고쳤다사본에 없는 단어를 학자가 추정하여 재구성함 (Conjecture)
divinatiodiv.직관적으로 추측했다.사본의 심각한 오류를 학자의 통찰로 복원해냄
emendavitemend.교정했다오류가 명백한 사본의 텍스트를 바르게 바로잡음
supplevitsuppl.보충했다훼손되어 빠진 부분을 추정하여 채워 넣음
transposuittr.도치했다단어나 문장의 순서를 바꿈
defenditdef.방어했다다른 학자의 수정 제안에 맞서 사본의 원래 독법을 옹호함
probavitprob.승인했다특정 이본이나 교정안이 옳다고 받아들임
tentavittempt.시도했다텍스트 수정을 단정 짓지 않고 하나의 가능성으로 제안함
suspicatus estsusp.의심했다텍스트에 오염이나 위작 가능성이 있다고 여김
statuitstat.확정했다 / 세웠다편집자가 판본의 표준 텍스트로 확정함
indicavitindic.지적했다 / 표시했다텍스트상의 결락이나 이상점을 표시함
inseruitins.삽입했다단어나 구절을 텍스트 사이에 집어넣음
mutavitmut.변경했다기존 형태나 어휘를 다른 것으로 바꿈
continuavitcont.이어서 썼다화자 변경 없이 문장을 계속 이어감
tribuittrib.~의 것으로 보았다특정 구절이나 대사를 특정 화자의 것으로 할당함
explevitexpl.채워 넣었다결락되거나 부족한 의미를 채워 완성함
malimmal.선호했다여러 독법 중 특정 독법을 더 선호함

4. 비교, 상태, 문맥 관련 표현

단어약어설명
varia lectiov. l.이본사본들 사이에 서로 다르게 적혀 있는 읽기 방식
lectiolect.독법특정 사본이 채택하고 있는 글자나 문장
alii / aliteral.다른 이들 / 다르게다른 학자들 / 다른 방식으로 적힘
apudap.~에 인용됨다른 고대 저작자의 인용문 속에 나타남
confercf.비교하라참고할 만한 다른 본문이나 사본을 제시할 때 사용
videv. / vid.보라참고하라는 지시 / 사본의 상태에 대한 추정
idemid.동일 인물바로 앞에 언급된 학자나 필사자와 동일인
ibidemibid.동일 문헌바로 앞에 언급된 출처/문헌과 동일한 곳
vulgatavulg.전통 텍스트널리 통용되던 표준적 텍스트
editionesedd.판본들 / 편집자들간행된 여러 비판정본들
testede / testibusteste / testibus~의 증언에 따르면특정 학자나 문헌의 증언을 인용할 때
agnovitagn.인정했다.특정 독법의 타당성을 인정함
addubitavitaddub.의문을 품었다.해당 단어나 구절의 진위 여부에 의문을 제기함
단어약어설명
lacunalac.결락원문이 파손되거나 빠져서 비어 있는 상태
deest / desuntdeest유실됨 (단수/복수)특정 단어나 구절이 사본에서 빠져 있음
exciditexc.누락되었다필사자의 실수로 텍스트가 빠짐
hic locush. l.이 대목지금 논의하고 있는 본문의 특정 위치
ut videturut vid.~인 것처럼 보인다.확실치 않으나 사본의 상태상 추정될 때
dubitanterdub.의심스럽게확신 없이 주저하며 제안함
fortasse / fortefort.아마도모호한 대목에 대한 추측성 제안
fortisanforsan어쩌면가능성을 열어두는 추측 표현
similiasim.유사한 대목들본문과 유사한 구절이나 용례
operis citatoop. cit.인용된 저작앞에서 이미 언급된 논문이나 저서
loco citatoloc. cit.인용된 위치앞에서 언급된 책의 바로 그 페이지/구절

나가며: 비판 장치를 읽는다는것

비판 장치를 읽는다는 것은 편집자가 완성해 둔 매끈한 ‘정본’이라는 결과물에 고개를 끄덕이는 데 그치지 않고, 수천 년 동안 문헌이 흘러온 거친 역사 속으로 직접 들어가는 행위이다.

본문 아래의 작고 빽빽한 라틴어 약어들은 단순한 나열이 아니다. 그것은 고대의 필사자가 촛불 아래서 고민했던 흔적이자, 르네상스 학자들이 원전을 복원하기 위해 벌인 치열한 논쟁의 기록이라고 할 수있다. 비판 장치를 열어볼 때, 독자는 비로소 단순한 수동적 수용자에서 벗어나 고전학자들과 함께 텍스트를 입체적으로 해석하는 ‘열린 텍스트’의 탐험가가 될 것이다.

[고전학] 고전어 텍스트의 온라인 액세스 [2026. 08. 26]

국내에서 고전어 (고대 그리스어 및 라틴어) 원전 텍스트 도서를 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헌책방을 포함한 중고 시장에 가끔 판매되는 원서를 알음알음 모아가거나, 신간의 경우 해외 직구를 통해 서적을 구해야 하는 일이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마저도 더 이상 출판되지 않는 오래된 서적의 경우에는 웃돈을 얹어 구매해야 하는데, 개인 연구자나 학생의 입장에서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온라인으로 눈을 돌리면, 언어의 장벽을 감안하더라도 생각보다 많은 자료를 얻을 수 있다. 기관이나 대학에 속한 연구자들이 사용하는 학술 데이터베이스는 그 자료의 양과 질이 압도적으로 높지만, 유료 구독을 통해 접근이 가능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런 여건에 있지 않은 개인 연구자나 학생들을 위해,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고전어 PDF 데이터베이스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또한 이런 디지털 데이터베이스의 경우, 고대 그리스어나 라틴어의 문법적인 요소를 하나하나 분석Parsing해주는 기능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기에, 학생들에게 특히 유용하다.

■ 평문 열람

1. Perseus Digital Library

미국 TUFTS 대학 고전학부에서 1985년에 시작된 프로젝트로, 고대 그리스어와 라틴어, 아랍어, 독일어 등의 자료와 더불어 르네상스 시대, 19세기 영문학 등을 망라하는 대규모 아카이브 성격의 웹사이트이다. 현재 메이저 업데이트 버전은 4.0이며, 2019년을 기점으로 컬렉션/인프라 업데이트를 멈추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인해 모든 자료들이 학계 최신은 아니지만, Perseus Digital Library는 여전히 학생들에게 유용하다.

Perseus 단어 검색창 입력 방식

Perseus의 가장 강력한 기능은 고대 그리스어 단어 검색에 있다. 직관적인 표기법을 통해, 컴퓨터나 휴대전화에 고대 그리스어 키보드를 설치하지 않고도 쉽게 단어를 찾을 수 있다. 이 단어 검색 기능은 LSJ, Middle Liddell, Slater Autenrieth 등의 고대 그리스어 사전 데이터베이스와 연결되어 있어, 다양한 해석과 용례를 찾을 수 있다. Perseus에 등재된 그리스어 컬렉션의 전체 규모는 약 8백만 단어에 달하는데, Word Frequency Statistic을 통해 어떤 텍스트에서 이 단어가 사용되었는지, 사용되었다면 몇 번이나 사용되었는지 등의 통계를 얻을 수 있다.

또한, 원문에 있는 텍스트를 클릭하면 그 즉시 위와 동일한 검색 기능을 통해 바로 단어를 찾고 분석할 수 있다.

2. First1KGreek

이 프로젝트는 호메로스부터 기원후 2세기 까지 모든 그리스어 자료들의 수집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데, Perseus Digital Library 등 다른 오픈소스 아카이브에 존재하지 않는 자료들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되고있다.

3. Open Greek & Latin + Partners (Perseus 5.0 Beta)

누구나 열람 가능한 오픈소스 고전어 텍스트 학술 데이터베이스를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이며,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파트너는 상술한 Perseus Digital Library 와 First1KGreek이 대표적이다. 평문으로 열람 가능한 자료는 2699개에 달한다.

Scaife Viewer라는 기능이 대표적인데, Open Greek & Latin 프로젝트의 일부로 이후 Perseus 5.0의 기반이 될 시스템이다. 프로젝트 내 모든 자료들을 쉽게 평문으로 읽을 수 있게 해 주는 열람 프로그램이자, 컬렉션 카탈로그라고 할 수있다. 기존 Perseus 4.0 보다 비약적으로 발전된 가독성과 각종 편의 사항이 추가되었다.

4. TLG: Thesaurus Linguae Graecae

미국 어바인 캘리포니아 대학교에 속한 연구 기관이자 동명의 프로젝트이다. 유/무료 온라인 데이터베이스를 제공한다. 회원가입을 통해, 아래의 서비스 3종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사전(Lexica): Liddell-Scott-Jones (LSJ), Cunliffe의 《호메로스 방언 사전》Lexicon of the Homeric Dialect, Powell의 《헤로도토스 사전》Lexicon to Herodotus, 《비잔틴 그리스어 사전》Lexikon zur Byzantinischen Gräzität (LBG), S. Koumanoudes의 《그리스 근현대 신어 사전》Συναγωγή νέων λέξεων, 그리고 《현대 그리스어 역사/방언 사전》Historical Dictionary of Modern Greek (ILNE)을 망라한 총 6종의 사전이 디지털화 되어 있으며 자유롭게 검색할 수있다.

TLG Canon: TLG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된 약 2,000명의 저자, 10,000개의 텍스트 서지 정보를 열람할 수 있다. 온라인 버전이 아닌 출판본 버전은 약 4,500명의 저자, 20,000개의 텍스트 서지 정보가 수록되어 있다.

Abridged TLG: 전체 TLG 데이터베이스 자료 중 한정된 부분만을 검색할 수 있지만, 사용량이 높은 호메로스나 플라톤 등은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다.

PDF 열람

A. Links Galore

저작권이 만료된 각종 고전어 출판물들을 열람할 수 있는 링크가 정리된 Google Docs 문서이다. Les Belles Lettres의 Collection Budé, Harvard University Press의 Loeb Classical Library 및 Bibliotheca Teubneriana 등을 포함한 27개의 세부 컬렉션이 존재하며, Internet Archive 혹은 HathiTrust와 연결되는 링크가 수록되어 있다. 아래 서술하는 A Teubner A Day는 Links Galore로 흡수되었으며, Loebolus나 Edonnelly, WilbourHall/Namas Te와 겹치는 저작이 많다.

A Teubner A Day

저작권이 만료된 Bibliotheca Scriptorum Graecorum et Romanorum Teubneriana 서적들의 PDF를 열람할 는 웹사이트이다. 더 이상 업데이트 되지 않고 있으며, Links Galore에서 더 많은 자료를 찾을 수 있다.

B. Loebolus

저작권이 만료된 Loeb Classical Library 서적들의 PDF를 열람할 수 있다.

C. WilbourHall / Namas Te

수학 / 과학 분야에 특화된, 고전어 출판물 아카이브 웹사이트이다. 고대 그리스어, 라틴어, 아랍어, 산스크리트어 등을 포함한 문서들에 대한 연결 링크가 있다.

D. Geoffery Steadman

동명의 연구자가 발간하는 텍스트 및 주석 참고서. 플라톤, 호메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등의 텍스트를 그의 주석과 함께 보며 공부할 수있다.

E. Faenum Publishing

갈레노스, 히포크라테스 등의 텍스트 및 주석

F. AWOL – The Ancient World Online

고전학 관련 오픈 액세스 자료들을 아카이브하는 웹사이트이다. 저널과 교재 등 자료의 형태를 가리지 않는다.

G. Textkit

고전 희랍어 및 라틴어 학습 자료들과 텍스트 모음

H. IntraText, The Latin Library, Itinera Electronica

라틴어 텍스트 모음

I. mikrosapoplous, Hodoi Elektronikai, Areopage

그리스어 텍스트 모음

J. Augsburg

고전어 및 다양한 텍스트 모음

아리스토텔레스 《동물부분론》 및 《동물발생론》 번역 비교

라파엘로가 그린 〈아테네 학당〉Scuola di Atene, The School of Athens의 중심부를 보면, 좌측의 플라톤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우측의 아리스토텔레스는 손바닥을 펼쳐 땅을 향하고 있다. 천상의 세계를 중시한 스승과 달리, 제자는 우리가 발을 디딘 이 지상의 것들에도 깊은 관심을 두고 탐구했음을 라파엘로는 이렇게 한 장의 그림으로 압축해 냈다.

천상의 불변하는 형상είδος, idea(form)에만 집중했던 스승 플라톤과는 달리,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의 탐구 범위는 현실 세계로 넓게 확장되었다. 그는 형상뿐만 아니라 그 형상의 바탕이 되는 질료ὕλη, matter 역시 깊이 탐구했으며, 그의 학문적 발자취는 생물학과 자연 현상 등 방대한 영역에 걸쳐 있다. 그러나 대중에게 인지도가 높은 그의 대표 저작이 《형이상학》Metaphysica, 《니코마코스 윤리학》Ethica Nicomachea, 《정치학》Politica 등이다 보니, 우리는 보통 그의 탐구 대상을 인문-사회과학적 영역에만 국한하여 생각하곤 한다.

모든 지식인들의 스승 Il maestro di color che sanno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진가가 가장 빛나는 지점은 다름 아닌 자연φύσις에 대한 연구다. 그는 관념적 사유에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계를 체계적으로 관찰하고 분석한 선구적 과학자였다.

다행히 국내 학계에서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 탐구 저작들에 대해 꾸준한 관심을 보여왔다. 그의 저작 중 생명 현상과 그 원리인 영혼을 다룬 《영혼에 관하여(영혼론)》De Anima 는 유원기 (궁리, 2001, 절판), 김완수 (올재, 2016, 절판), 오지은 (아카넷, 2021)의 번역으로 총 3개의 판본이 존재하며, 이와 밀접한 주제를 다룬 《자연학 소론집》 Parva Naturalia 은 김진성 (이제이북스, 2015, 절판)의 번역으로 소개된 바 있다. 더불어 《아리스토텔레스의 심리철학》(유원기, 아카넷, 2023) 같은 깊이 있는 연구서들도 출판되어 학술적 논의를 뒷받침하고 있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 탐구 가운데 생물학(동물학) 분야는 근래까지도 이렇다 할 주목을 받지 못했다. 생물학 저작들과 인접한 《영혼에 관하여》만 번역되었을 뿐, 동물 탐구를 본격적으로 다룬 핵심 저작의 완역본은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 2022년까지의 현실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 분야의 연구 환경도 조금씩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생물학을 흥미롭게 풀어낸 2차 저작 《과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생물학 여행 라군》(아리망 마리 르로이, 양병찬 옮김, 동아엠앤비, 2022, 이하 《라군》)이 국내에 소개되면서 대중적 관심이 환기되었고, 이어 2023년 출판된 《아리스토텔레스 선집》(김재홍 외 옮김, 도서출판 길, 2023, 이하 《선집》)을 통해 그동안 한번도 국역된 적이 없었던 《자연학》Physica, 《생성소멸론》De Generatione et Corruptione, 《동물부분론》De Partibus Animalium, 《동물운동론》De Motu Animalium의 주요 내용이 발췌 번역되어 마침내 햇빛을 보게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생물학 저작

아리스토텔레스의 생물학 관련 주요 저작으로는 《동물탐구》Historia Animalium, 《동물부분론》De Partibus Animalium, 《동물운동론》De Motu Animalium 및 《동물발생론》De Generatione Animalium이 꼽힌다. 이 네 저작을 아리스토텔레스의 생물학 4부작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저작들의 국내 번역 현황을 정리하면 아래의 표와 같다.

제목번역
동물탐구X
동물부분론김재홍 (그린비, 2024)
및《선집》 일부 발췌역
동물운동론《선집》 일부 발췌역
동물발생론김재홍 (그린비, 2025)
조대호 (아카넷, 2025)

《동물부분론》은 생명체를 구성하는 각 ‘기관(부분들)’의 해부학적 구조와 물질적 기초를 규명하고, 그것들이 존재하는 ‘목적과 기능적 필연성’을 다루는 반면에, 《동물발생론》은 단순한 부품들의 배열/나열을 넘어, 몸과 혼이 결합해 한 개체로 완성되는 ‘발생’의 동역학적 메커니즘과, 질료형상설의 구현을 다룬다.

위 표에서 볼 수 있듯 아리스토텔레스의 생물학 저작 번역은 각기 다른 번역자의 손을 거쳐 이루어졌다. 그중에서도 동물의 형태와 목적을 다루는 《동물부분론》과, 그 형태가 실제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발생하는지)를 다루는 《동물발생론》은 서로 상호 보완적인 관계에 있다. 그런 만큼 두 저작에서 쓰이는 핵심 그리스어 개념어들이 한국어로 얼마나 일관되게 옮겨졌는지 대조해 보는 작업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개념어가 서로 어긋나면, 두 저작이 이루는 유기적 관계를 읽어 내는 데에도 장벽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럼 이제 실제 번역 텍스트를 통해, 두 책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던진 질문들이 현대 한국어로 어떻게 생생히 옮겨졌는지 살펴보자.

동물의 부분에 관하여 (동물부분론) 646a4 – 30 번역 비교

김재홍 (그린비, 2024)

그러므로 그다지 고귀하다고 할 수 없는 동물에 대한 탐구를 어린아이처럼 싫어해서는 안 된다. 모든 자연물에는 놀라운 것들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마치 그렇듯이 동물 각각에 대한 탐구에서도 모든 것에 뭔가 자연적이며 아름다운 것이 있다고 생각하여 혐오감 없이 나아가야 한다. 그것은 자연의 작품에는 닥치는 대로의 것이 아니라 무엇을 위해서라는 것을, 사실상 무엇보다도 더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물이 그것을 위해서 구성되거나 생겨났던 곳의 그 목적이 아름다운(고귀한) 것이라는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 이외의 동물에 대한 고찰을 고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자기 자신에 대한 고찰도 마찬가지로 생각해야 한다. 그 이유는 예ㅡㄹ 들어 피, 살, 뼈, 혈관, 그 밖에 그와 같은 부분과 같은 인간이라는 유를 구성하고 있는 것은 상당한 혐오감 없이는 관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선집》 수록, 조대호 (도서출판 길, 2023),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덜 가치 있는 동물들을 연구하는 데 유아적인 혐오증을 떨쳐 버려야 한다. 왜냐하면 자연적인 사물들 속에는 무언가 놀라운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도 각각 동물들에 대해 연구를 진척시켜 나가야 하며, 그것들 모두에 자연적이고 아름다운 어떤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왜냐하면 아무렇게나 있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위해 있는 것이 자연적인 것들 안에 두드러지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것들이 구성되고 존재하게 된 목적은 아름다운 것 가운데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만일 누군가가 다른 동물들에 대한 연구가 무가치하다고 보았다면,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생각해야만 할 것이다. 왜냐하면 상당한 혐오감이 없이는 인간을 구성하는 부분들, 즉 피, 육신, 뼈, 혈관 등도 바라볼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동물의 발생에 관하여 (동물발생론) 715a1 – 8 번역 비교

우리는 동물들에 속한 다른 부분들에 관해서 그것들을 공통적으로 다루기도 하고, 개별 부류에 따라 고유한 부분들에 관해서 독립적으로 다루면서, 각 부분이 어떤 방식으로 그런 종류의 원인 때문에, 즉 ‘지향점’이라는 뜻의 원인 때문에 있는지 이미 이야기했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네 가지 원인이 있어서, 하나는 ‘목적’이라는 뜻의 지향점이고 다른 하나는 ‘본질의 로고스’이며(그런데 우리는 대략 이 둘을 하나로 받아들여야 한다), 셋째와 넷째는 각각 ‘질료’와 ‘운동이 시작되는 출처’이다.

동물 몸의 다른 부분에 대해서, 이 같은 원인에 의해 각 부분이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는지를 동물 일반에 공통되는 관점에서 말해 온 것과 동시에, 동물의 각각의 유에 고유한 부분에 대해 개별적으로 말해 왔다. 여기서 내가 ‘원인’이라고 말하는 것은 ‘무언가를 위해서’라는 원인을 말한다. 즉 원인으로서 밑에 놓여 있는 것에는 4종류가 있는데, 목적으로서 ‘그것을 위해서’의 ‘그것’과 본질적 실체(ousia)에 대한 설명 규정(이 둘은 사실상 하나의 것으로서 받아들여야 한다), 또한 세 번째 및 네 번째 것으로서 질료 및 거기로부터 운동이 시작되는 것이 그렇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생물학 저작 읽기

대다수의 아리스토텔레스 저작들이 그렇듯, 아무리 상세한 주석이 딸려 있어도 맨땅에 원전을 부딪쳐 읽어 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의 생물학 저서에는 뛰어난 관찰력과 과학적 방법론이 잘 녹아 있지만,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면 잘못된 추론이나 인과 관계를 잘못 짚는 오류도 종종 눈에 띈다. 서구 사상사에 그가 드리운 거대한 그림자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의 서술이 늘 명쾌하고 이성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때로는 애매모호하고 중언부언하며, 완전히 잘못된 길(예컨대 자연발생설)로 이끌기도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의 저작에서 엄밀한 의미의 자연과학이 태동하는 지점을 목격할 수 있다. 《동물탐구》에서 비교동물학의 기원을, 《동물부분론》에서 기능해부학의 기원을 찾을 수 있다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동물탐구》에서 식재료 이상의 가치를 지니지 못했던 백여 마리의 생선과 성게, 해삼 등을 관찰하는 한편, 바다에 살면서도 젖을 먹여 새끼를 키우는 돌고래에 대해서도 서술을 남겼다. 그리고 《동물부분론》에서는 이런 관찰적 사실을 바탕으로 각 기관의 역할과 구성을 체계적으로 다룬다.

이렇게 놓고 보면 그의 생물학 저서들은 다소 지루하고 딱딱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누구나 알 법한,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는 이야기를 늘어놓다가도 문득 뜬구름 잡는 질문을 던지곤 한다. 대개는 “이것(물고기)들은 어떻게 생겼으며 어디에 살고, 새끼는 몇이나 낳으며, 등지느러미는 가시가 억세더라” 같은 식의 관찰 보고가 주를 이루고, “어떤 동물은 새끼를 낳고 어떤 종류는 알을 낳는데, 물에서 사는 생물 대부분은 알을 낳지만 고래와 연골어류 등은 새끼를 낳더라” 같은 서술이 이어진다. 그러다가도 불쑥 “왜 물고기는 아가미가 있는가?”, “눈꺼풀의 용도는 무엇인가?”, “생명이란 무엇이며 생물체에 어떻게 깃드는가?” 같은 물음들이 고개를 든다.

《라군》

그렇다면 이토록 장황하고 복잡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생물학을, 처음 공부하는 이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아르망 마리 르로이가 쓴 《과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생물학 여행 라군》(양병찬 옮김, 동아엠앤비, 2022, 이하 《라군》)부터 읽어 보길 권한다. 《라군》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철학과 생물학을 아우르는 교양과학서다. 《동물탐구》를 기반으로 아리스토텔레스 생물학의 재평가를 시도하면서, 앞서 언급한 《동물부분론》, 《동물발생론》 등의 내용까지 폭넓게 엮어 이해를 돕는다. 가끔 전문적인 이야기로 흐를 때도 있지만, 대체로 천천히 따라갈 수 있는 수준이다.

중·고등학교 과학 시간에 얼핏 스쳐 지나가듯 들었던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저 썩은 빵에서 구더기가 생겨난다고 믿었던 이상한 철학자로 남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자연철학이 지닌 무게를 알게 된 독자라면, “과학의 기원을 좇는 이들이 왜 틈만 나면 고대 그리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로 되돌아가는가”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자연은 정말 헛된 일을 하지 않는가. 우리 생물체들의 목적이란 무엇인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을 읽다 보면 결국 스스로에게 던지게 되는 질문들이다.

John Milton; Paradise Lost, Book II, 299-309

Which when Beelzebub perceiv’d, then whom,

Satan except, none higher sat, with grave

Aspect he rose, and in his rising seem’d

A Pillar of State; deep on his Front engraven

Deliberation sat and public care;

And Princely counsel in his face yet shon,

Majestic though in ruin: sage he stood

With Atlantean shoulders fit to bear

The weight of mightiest Monarchies; his look

Drew audience and attention still as Night

Or Summers Noon-tide air, while thus he spake.

그때 사탄을 제외하고 제일 지위가 높은 자인

베엘제붑은 장중한 모습으로 일어났는데,

몸을 일으킨 그의 모습은 한 나라의

기둥과도 같았다. 그의 얼굴에는

신중함과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이 깊게 새겨져 있었으며,

비록 몰락하였더라도 그의 위엄 서린 얼굴에서는

대공의 지혜가 여전히 빛났다.

그는 강대한 왕국들의 무게를 떠받치기에 손색없는

아틀라스와 같은 어깨를 보이며 서 있었다.

그의 풍채에 이목이 끌린 좌중들 사이로 한밤이나

여름날 정오의 공기 같은 정적이 흘렀고,

그는 그때서 입을 열었다.

Ben Jonson; My Picture Left in Scotland

I now think, Love is rather deaf, than blind;

For else it could not be,

That She,

Whom I adore so much, should so slight me

And cast my love behind;

I’m sure my language to her as sweet,

And every close did meet,

In sentence of as subtle feet,

As hath the youngest He,

That sits in shadow of Apollo’s tree.

Oh buy my conscious fears,

That fly my thoughts between,

Tell me that she hath seen

My hundreds of gray hairs,

Told seven and forty years,

Read so much waist, as she cannot embrace

My mountain belly and my rocky face;

And all these through her eyes, have stopp’d her ears.

이제와 생각해보니 사랑이란, 눈이 머는 것이 아니라

귀가 먹는 것이 아닐까 해요

그게 아니라면

내가 그토록 사랑하는 그녀가

나를 업신여기고

내 사랑을 저버릴 수 없을텐데 말이에요

그녀를 향한 나의 모든 말은

아폴로 신의 나무​ 아래 앉은

젊은이의 맨발처럼

부드럽고 달콤했을 텐데 말이죠.

아, 그러나 내 머릿속을 헤집는

내 두려움이 말하네요

그녀가 내 잿빛 머리칼을 보았고,

내가 마흔 일곱 살이나 된 것을 들었고,

나의 굵은 허리를 알아채는 바람에,

그녀가 내 산 같은 배와 바위 같은 얼굴을

감싸 안을 수 없었다고요

이런 내 모습을 본 그녀의 눈이 귀를 막아버린 것이 분명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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