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 《동물부분론》 및 《동물발생론》 번역 비교

라파엘로가 그린 〈아테네 학당〉Scuola di Atene, The School of Athens의 중심부를 보면, 좌측의 플라톤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우측의 아리스토텔레스는 손바닥을 펼쳐 땅을 향하고 있다. 천상의 세계를 중시한 스승과 달리, 제자는 우리가 발을 디딘 이 지상의 것들에도 깊은 관심을 두고 탐구했음을 라파엘로는 이렇게 한 장의 그림으로 압축해 냈다.

천상의 불변하는 형상είδος, idea(form)에만 집중했던 스승 플라톤과는 달리,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의 탐구 범위는 현실 세계로 넓게 확장되었다. 그는 형상뿐만 아니라 그 형상의 바탕이 되는 질료ὕλη, matter 역시 깊이 탐구했으며, 그의 학문적 발자취는 생물학과 자연 현상 등 방대한 영역에 걸쳐 있다. 그러나 대중에게 인지도가 높은 그의 대표 저작이 《형이상학》Metaphysica, 《니코마코스 윤리학》Ethica Nicomachea, 《정치학》Politica 등이다 보니, 우리는 보통 그의 탐구 대상을 인문-사회과학적 영역에만 국한하여 생각하곤 한다.

모든 지식인들의 스승 Il maestro di color che sanno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진가가 가장 빛나는 지점은 다름 아닌 자연φύσις에 대한 연구다. 그는 관념적 사유에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계를 체계적으로 관찰하고 분석한 선구적 과학자였다.

다행히 국내 학계에서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 탐구 저작들에 대해 꾸준한 관심을 보여왔다. 그의 저작 중 생명 현상과 그 원리인 영혼을 다룬 《영혼에 관하여(영혼론)》De Anima 는 유원기 (궁리, 2001, 절판), 김완수 (올재, 2016, 절판), 오지은 (아카넷, 2021)의 번역으로 총 3개의 판본이 존재하며, 이와 밀접한 주제를 다룬 《자연학 소론집》 Parva Naturalia 은 김진성 (이제이북스, 2015, 절판)의 번역으로 소개된 바 있다. 더불어 《아리스토텔레스의 심리철학》(유원기, 아카넷, 2023) 같은 깊이 있는 연구서들도 출판되어 학술적 논의를 뒷받침하고 있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 탐구 가운데 생물학(동물학) 분야는 근래까지도 이렇다 할 주목을 받지 못했다. 생물학 저작들과 인접한 《영혼에 관하여》만 번역되었을 뿐, 동물 탐구를 본격적으로 다룬 핵심 저작의 완역본은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 2022년까지의 현실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 분야의 연구 환경도 조금씩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생물학을 흥미롭게 풀어낸 2차 저작 《과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생물학 여행 라군》(아리망 마리 르로이, 양병찬 옮김, 동아엠앤비, 2022, 이하 《라군》)이 국내에 소개되면서 대중적 관심이 환기되었고, 이어 2023년 출판된 《아리스토텔레스 선집》(김재홍 외 옮김, 도서출판 길, 2023, 이하 《선집》)을 통해 그동안 한번도 국역된 적이 없었던 《자연학》Physica, 《생성소멸론》De Generatione et Corruptione, 《동물부분론》De Partibus Animalium, 《동물운동론》De Motu Animalium의 주요 내용이 발췌 번역되어 마침내 햇빛을 보게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생물학 저작

아리스토텔레스의 생물학 관련 주요 저작으로는 《동물탐구》Historia Animalium, 《동물부분론》De Partibus Animalium, 《동물운동론》De Motu Animalium 및 《동물발생론》De Generatione Animalium이 꼽힌다. 이 네 저작을 아리스토텔레스의 생물학 4부작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저작들의 국내 번역 현황을 정리하면 아래의 표와 같다.

제목번역
동물탐구X
동물부분론김재홍 (그린비, 2024)
및《선집》 일부 발췌역
동물운동론《선집》 일부 발췌역
동물발생론김재홍 (그린비, 2025)
조대호 (아카넷, 2025)

《동물부분론》은 생명체를 구성하는 각 ‘기관(부분들)’의 해부학적 구조와 물질적 기초를 규명하고, 그것들이 존재하는 ‘목적과 기능적 필연성’을 다루는 반면에, 《동물발생론》은 단순한 부품들의 배열/나열을 넘어, 몸과 혼이 결합해 한 개체로 완성되는 ‘발생’의 동역학적 메커니즘과, 질료형상설의 구현을 다룬다.

위 표에서 볼 수 있듯 아리스토텔레스의 생물학 저작 번역은 각기 다른 번역자의 손을 거쳐 이루어졌다. 그중에서도 동물의 형태와 목적을 다루는 《동물부분론》과, 그 형태가 실제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발생하는지)를 다루는 《동물발생론》은 서로 상호 보완적인 관계에 있다. 그런 만큼 두 저작에서 쓰이는 핵심 그리스어 개념어들이 한국어로 얼마나 일관되게 옮겨졌는지 대조해 보는 작업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개념어가 서로 어긋나면, 두 저작이 이루는 유기적 관계를 읽어 내는 데에도 장벽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럼 이제 실제 번역 텍스트를 통해, 두 책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던진 질문들이 현대 한국어로 어떻게 생생히 옮겨졌는지 살펴보자.

동물의 부분에 관하여 (동물부분론) 646a4 – 30 번역 비교

김재홍 (그린비, 2024)

그러므로 그다지 고귀하다고 할 수 없는 동물에 대한 탐구를 어린아이처럼 싫어해서는 안 된다. 모든 자연물에는 놀라운 것들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마치 그렇듯이 동물 각각에 대한 탐구에서도 모든 것에 뭔가 자연적이며 아름다운 것이 있다고 생각하여 혐오감 없이 나아가야 한다. 그것은 자연의 작품에는 닥치는 대로의 것이 아니라 무엇을 위해서라는 것을, 사실상 무엇보다도 더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물이 그것을 위해서 구성되거나 생겨났던 곳의 그 목적이 아름다운(고귀한) 것이라는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 이외의 동물에 대한 고찰을 고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자기 자신에 대한 고찰도 마찬가지로 생각해야 한다. 그 이유는 예ㅡㄹ 들어 피, 살, 뼈, 혈관, 그 밖에 그와 같은 부분과 같은 인간이라는 유를 구성하고 있는 것은 상당한 혐오감 없이는 관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선집》 수록, 조대호 (도서출판 길, 2023),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덜 가치 있는 동물들을 연구하는 데 유아적인 혐오증을 떨쳐 버려야 한다. 왜냐하면 자연적인 사물들 속에는 무언가 놀라운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도 각각 동물들에 대해 연구를 진척시켜 나가야 하며, 그것들 모두에 자연적이고 아름다운 어떤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왜냐하면 아무렇게나 있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위해 있는 것이 자연적인 것들 안에 두드러지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것들이 구성되고 존재하게 된 목적은 아름다운 것 가운데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만일 누군가가 다른 동물들에 대한 연구가 무가치하다고 보았다면,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생각해야만 할 것이다. 왜냐하면 상당한 혐오감이 없이는 인간을 구성하는 부분들, 즉 피, 육신, 뼈, 혈관 등도 바라볼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동물의 발생에 관하여 (동물발생론) 715a1 – 8 번역 비교

우리는 동물들에 속한 다른 부분들에 관해서 그것들을 공통적으로 다루기도 하고, 개별 부류에 따라 고유한 부분들에 관해서 독립적으로 다루면서, 각 부분이 어떤 방식으로 그런 종류의 원인 때문에, 즉 ‘지향점’이라는 뜻의 원인 때문에 있는지 이미 이야기했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네 가지 원인이 있어서, 하나는 ‘목적’이라는 뜻의 지향점이고 다른 하나는 ‘본질의 로고스’이며(그런데 우리는 대략 이 둘을 하나로 받아들여야 한다), 셋째와 넷째는 각각 ‘질료’와 ‘운동이 시작되는 출처’이다.

동물 몸의 다른 부분에 대해서, 이 같은 원인에 의해 각 부분이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는지를 동물 일반에 공통되는 관점에서 말해 온 것과 동시에, 동물의 각각의 유에 고유한 부분에 대해 개별적으로 말해 왔다. 여기서 내가 ‘원인’이라고 말하는 것은 ‘무언가를 위해서’라는 원인을 말한다. 즉 원인으로서 밑에 놓여 있는 것에는 4종류가 있는데, 목적으로서 ‘그것을 위해서’의 ‘그것’과 본질적 실체(ousia)에 대한 설명 규정(이 둘은 사실상 하나의 것으로서 받아들여야 한다), 또한 세 번째 및 네 번째 것으로서 질료 및 거기로부터 운동이 시작되는 것이 그렇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생물학 저작 읽기

대다수의 아리스토텔레스 저작들이 그렇듯, 아무리 상세한 주석이 딸려 있어도 맨땅에 원전을 부딪쳐 읽어 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의 생물학 저서에는 뛰어난 관찰력과 과학적 방법론이 잘 녹아 있지만,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면 잘못된 추론이나 인과 관계를 잘못 짚는 오류도 종종 눈에 띈다. 서구 사상사에 그가 드리운 거대한 그림자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의 서술이 늘 명쾌하고 이성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때로는 애매모호하고 중언부언하며, 완전히 잘못된 길(예컨대 자연발생설)로 이끌기도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의 저작에서 엄밀한 의미의 자연과학이 태동하는 지점을 목격할 수 있다. 《동물탐구》에서 비교동물학의 기원을, 《동물부분론》에서 기능해부학의 기원을 찾을 수 있다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동물탐구》에서 식재료 이상의 가치를 지니지 못했던 백여 마리의 생선과 성게, 해삼 등을 관찰하는 한편, 바다에 살면서도 젖을 먹여 새끼를 키우는 돌고래에 대해서도 서술을 남겼다. 그리고 《동물부분론》에서는 이런 관찰적 사실을 바탕으로 각 기관의 역할과 구성을 체계적으로 다룬다.

이렇게 놓고 보면 그의 생물학 저서들은 다소 지루하고 딱딱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누구나 알 법한,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는 이야기를 늘어놓다가도 문득 뜬구름 잡는 질문을 던지곤 한다. 대개는 “이것(물고기)들은 어떻게 생겼으며 어디에 살고, 새끼는 몇이나 낳으며, 등지느러미는 가시가 억세더라” 같은 식의 관찰 보고가 주를 이루고, “어떤 동물은 새끼를 낳고 어떤 종류는 알을 낳는데, 물에서 사는 생물 대부분은 알을 낳지만 고래와 연골어류 등은 새끼를 낳더라” 같은 서술이 이어진다. 그러다가도 불쑥 “왜 물고기는 아가미가 있는가?”, “눈꺼풀의 용도는 무엇인가?”, “생명이란 무엇이며 생물체에 어떻게 깃드는가?” 같은 물음들이 고개를 든다.

《라군》

그렇다면 이토록 장황하고 복잡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생물학을, 처음 공부하는 이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아르망 마리 르로이가 쓴 《과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생물학 여행 라군》(양병찬 옮김, 동아엠앤비, 2022, 이하 《라군》)부터 읽어 보길 권한다. 《라군》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철학과 생물학을 아우르는 교양과학서다. 《동물탐구》를 기반으로 아리스토텔레스 생물학의 재평가를 시도하면서, 앞서 언급한 《동물부분론》, 《동물발생론》 등의 내용까지 폭넓게 엮어 이해를 돕는다. 가끔 전문적인 이야기로 흐를 때도 있지만, 대체로 천천히 따라갈 수 있는 수준이다.

중·고등학교 과학 시간에 얼핏 스쳐 지나가듯 들었던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저 썩은 빵에서 구더기가 생겨난다고 믿었던 이상한 철학자로 남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자연철학이 지닌 무게를 알게 된 독자라면, “과학의 기원을 좇는 이들이 왜 틈만 나면 고대 그리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로 되돌아가는가”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자연은 정말 헛된 일을 하지 않는가. 우리 생물체들의 목적이란 무엇인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을 읽다 보면 결국 스스로에게 던지게 되는 질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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